새순 색깔이랑 똑같은 연두색 벌레가 새순 위에 앉아 있어도 못 알아봅니다. 저도 몇 년째 원인 모를 구멍 뚫린 잎을 보고 냉해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범인은 장님노린재였습니다.노린재란?포도밭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노린재는 몸집이 큰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같은 놈이 아니라, 훨씬 작고 눈에 안 띄는 애무늬고리장님노린재입니다. 장님노린재과에 속하는 종으로, 이름처럼 눈이 잘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몸이 작고 색이 새순과 비슷해서 사람 눈에 잘 안 띈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입니다.크기는 약충(부화 후 성충이 되기 전 단계) 1~3mm, 성충이 돼도 4~6mm에 불과합니다. 몸 색깔이 새순과 거의 같은 엷은 녹색이라, 저도 새순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였어요.전국 조사에서도 포도에 발생하는 노린재 ..
봉지를 벗겼는데 포도알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병인 줄 알고 몇 년을 살균제만 쳤는데, 알고 보니 범인은 병균이 아니라 봉지 속으로 기어들어 간 가루깍지벌레였습니다.깍지벌레란?포도밭에서 골치 아픈 건 흔히 아는 깍지벌레와는 좀 다릅니다. 일반적인 깍지벌레는 몸에 딱딱한 밀랍질 깍지를 뒤집어쓰고 한자리에 붙어삽니다. 그런데 포도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건 가루깍지벌레인데, 이름처럼 흰 가루 같은 밀랍으로 덮여 있지만 깍지가 없어서 자유롭게 기어다닙니다.이 이동성이 진짜 문제입니다. 한자리에 고정된 깍지벌레보다 훨씬 넓게 퍼지고, 봉지 속까지 파고들어 과실 표면에 직접 붙어 흡즙을 합니다. 저도 처음엔 이 벌레가 움직인다는 걸 몰라서, 봉지를 씌우면 안전하다고만 생각했어요.가루깍지벌레는 그을음병을 ..
포도알 표면에 갈색 줄무늬가 코르크처럼 굳어 있으면 열 중 아홉은 총채벌레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걸 병으로 착각해서 살균제만 두 번 치고 넘어갔다가 결국 착과기에 상품성 등급을 통째로 낮춰야 했습니다.총채벌레란? 총채벌레는 몸길이 1~2mm 안팎의 가늘고 길쭉한 곤충으로, 눈으로 보면 그냥 까만 실오라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포도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종은 볼록총채벌레인데, 감이나 감귤에서도 피해가 크게 보고되는 종이라 과수 농가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입 구조가 좌우 비대칭인 게 특징인데, 쉽게 말하면 한쪽 턱만 발달해서 식물 조직을 긁어 즙을 빨아먹는 방식입니다. 이 흡즙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면서 표면이 코르크처럼 굳는 흔적이 남는 건데, 이게 바로 제가 착과기에 발견한 그..
작년 8월, 저희 포도밭 한 구역에서만 유독 잎끝이 타들어가듯 누렇게 마르기 시작했습니다.병해인 줄 알고 살균제부터 쳤는데 전혀 안 먹혔습니다.결국 토양 측정기를 꽂아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범인은 벌레도 곰팡이도 아니고 제가 직접 넣은 비료였습니다.그날 이후로 전기전도도, 흔히 EC라고 부르는 이 수치를 매주 체크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전기전도도(EC)란 대체 뭘까요전기전도도, 줄여서 EC라고 부르는 이 수치는 쉽게 말해 흙 속에 녹아있는 염류와 비료 성분이 얼마나 많은지를 전기가 통하는 정도로 나타낸 지표입니다.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전해질 이온, 그러니까 염류와 비료 성분이 많을수록 전기전도도는 높아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단위는 dS/m를 쓰는데, 데시지멘스 퍼 미터라고 읽으며..
장마 끝나고 볕 좋다고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그 다음 며칠이 열과와의 싸움 시작이거든요. 저도 샤인머스켓 밭에서 한여름 소나기 한 번에 송이째 갈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열과가 단순 운이 아니라 관리로 막을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열과란 무엇이고 왜 포도에서 특히 심할까열과란 과실이 급격히 수분을 흡수하면서 과피, 즉 포도알 껍질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터지는 생리장해입니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설명에 따르면 집중호우로 토양 수분이 갑자기 늘어난 상태에서 과실이 빠르게 물을 빨아들이면 과피 성장 속도가 이를 못 따라가면서 갈라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자료: 경상북도농업기술원).포도는 다른 과수보다 껍질이 얇고 탄력성이 낮은 편이라 열과 발생 가능성 자체가 높은 과종으로 꼽힙니다.제 경험상 이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