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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 지하수 개발업체 사장님이 불러준 숫자는 딱 그거였습니다. "이 정도면 농수용으로 충분해요, 더 안 파도 돼요." 그 한마디를 믿고 성토한 논바닥에 관정을 박은 게 6년 전인데, 지금도 바가지에 물 받아놓고 다음날 아침이면 뻘겋게 앉은 찌꺼기를 볼 때마다 그날의 제 선택을 후회합니다.
하천 하류 지역 지하수 굴착 깊이의 함정
제가 농사짓는 땅은 산간 지역이 아니라 하천 하류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은 지하수맥이 얕은 곳에서도 수량이 풍부하게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 굴착업체 입장에서는 깊이 팔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13m 깊이에서 농수용 수량이 충분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비용도 저렴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 깊이에서 관정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게 문제였습니다. 13m는 지표수와 가까운 얕은 대수층(帶水層)에 해당하는 깊이입니다.
여기서 대수층이란 땅속에서 물이 고이고 흐르는 지층을 뜻하는데, 얕은 대수층일수록 지표면의 유기물이나 오염물질이 스며들기 쉬운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름막과 쇳물 냄새, 철분·망간 함유 지하수 증상
개발 초기에는 몰랐습니다. 물이 잘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고 넘어갔으니까요.
문제를 처음 체감한 건 밭일을 마치고 손발을 씻으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바가지에 물을 받아놓으니 표면에 기름끼 같은 얇은 막이 둥둥 떠 있고, 코를 가까이 대면 특유의 쇳물 냄새, 이른바 쌘물 냄새가 확 올라왔습니다.
더 확실한 증거는 하루 정도 물을 그대로 놔뒀을 때 나타났습니다. 다음 날 보면 바가지 표면에 뻘건 찌꺼기가 층을 이루며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건 전형적인 철분·망간 과다 함유 지하수의 증상입니다.
먹는물 수질기준에서는 철 함량이 0.3mg/L, 망간은 0.3mg/L(수돗물 기준으로는 0.05mg/L)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넘으면 물에 색과 맛이 생기고 세탁물이나 배관에 적갈색 얼룩을 남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여성농업인신문 - 수질 기준항목의 특성).
제 관정 물이 딱 그랬습니다. 지하수 속의 철분은 원래 지하에서는 무색의 제1철 상태로 녹아있다가, 공기와 만나면 산화되면서 갈색의 침전물로 변한다고 하는데, 제가 바가지에서 목격한 그 뻘건 찌꺼기가 정확히 이 산화 과정의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밭에서 손발 세수는 아예 포기했습니다. 씻고 나면 오히려 피부가 더 텁텁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농약과 비료 사용 시 수질이 미치는 영향
단순히 냄새와 찌꺼기 문제였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진짜 문제는 이 물을 농약이나 비료 희석에 그대로 썼을 때 나타났습니다.
철분과 망간이 많이 녹아있는 물로 농약을 희석하면, 농약 성분과 금속 이온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약효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비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액비나 엽면시비용으로 희석할 때 수질이 나쁘면 양분 흡수율이 떨어지거나 침전물이 생겨 살포 장비가 막히는 상황까지 겪을 수 있습니다.
저도 초기에 이 물 그대로 엽면시비를 시도했다가 분무기 노즐이 며칠 만에 막혀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뜯어보니 노즐 안쪽에 붉은빛 침전물이 끼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게 단순한 미관 문제가 아니라 농사의 실질적인 손해로 이어진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 용도 | 저농질 지하수 사용 시 문제 |
|---|---|
| 농약 희석 | 금속 이온과의 반응으로 약효 저하 우려 |
| 비료·엽면시비 | 침전물로 인한 노즐 막힘, 흡수율 저하 |
| 단순 관수 | 토양에 서서히 축적되는 정도로 상대적으로 부담 적음 |
IBC탱크 빗물 저장 임시 대응 방법
필터 시설을 갖추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임시방편은 1톤짜리 IBC탱크 2개였습니다.
중고로 구한 IBC탱크에 비닐을 연결해서 하우스 지붕이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그대로 받아 저장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설비가 아니라 정말 비닐 몇 장과 파이프로 만든 손수 시설이었죠.
이렇게 모은 빗물은 농약과 비료를 희석할 때만 사용하고, 밭에 단순히 물을 대는 관수 작업에는 지하수를 그대로 썼습니다. 관수는 토양을 거쳐 서서히 흡수되는 방식이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방식은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빗물이 안 오는 시기에는 아쉬운 대로 지하수를 희석용으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노즐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게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농업용수 지하수 수질기준과 관정 개발 전 확인사항
지금 와서 돌아보면, 관정을 뚫기 전에 몇 가지만 더 확인했어도 이런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먼저 굴착 깊이입니다. 업체가 제시하는 수량 기준만 볼 게 아니라, 표층수 영향을 덜 받는 깊이까지 뚫을 수 있는지 함께 상담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관정 완공 후에는 반드시 수질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지하수법에 따르면 농업용수로 이용되는 지하수도 환경부령이 정하는 수질기준설정항목에 따라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출처: 워트랩 생활환경연구원 - 지하수 수질검사 안내).
저는 이 검사를 뒤늦게 진행했는데, 미리 했다면 굴착 단계에서부터 필터링 설비까지 한 번에 계획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이 관정을 새로 파실 계획이라면, 수량만 보지 마시고 반드시 수질검사까지 포함해서 판단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지하수 수질 문제 자주 묻는 질문
Q1. 13m면 원래 다 이렇게 수질이 안 좋은가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지역마다 지질 구조가 달라서 얕게 파도 괜찮은 곳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겪어보니 하천 하류처럼 표층수 영향이 큰 지역은 얕은 깊이일수록 철분·망간 문제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느꼈습니다.
Q2. 뻘건 찌꺼기가 생기면 무조건 마시면 안 되나요?
저는 애초에 이 물을 식수로 쓰지 않았습니다. 농업용으로 개발한 관정이라 별도의 음용수 수질검사를 받은 적은 없고, 정확한 판단을 원하시면 반드시 전문기관에 수질검사를 의뢰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Q3. 빗물 저장하는 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IBC탱크 입구에 촘촘한 방충망을 한 겹 덧대서 사용합니다. 낙엽이나 벌레가 들어가면 나중에 냄새가 나는 걸 경험한 뒤로 이렇게 바꿨습니다.
Q4. 철분 낀 물을 계속 관수에 쓰면 토양에 문제 없나요?
저도 이 부분이 걱정돼서 몇 년째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까지 눈에 띄는 생육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토양에 철분이 누적될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그래서 다음 편에서 다룰 필터 설비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Q5. 관정 판 지 오래됐는데 지금이라도 검사받는 게 의미 있나요?
당연히 의미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지나서야 검사를 받았는데, 오히려 그동안의 증상(냄새, 찌꺼기)을 근거로 어떤 항목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어서 검사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글을 마치며
지금 당장 해보실 수 있는 것부터 정리해봅니다.
첫째, 바가지나 투명 용기에 지하수를 받아 하루 정도 놔두고 색 변화를 직접 관찰해보세요.
둘째, 이상 증상이 보이면 가까운 수질검사기관에 철분·망간 항목을 포함한 검사를 의뢰해보세요.
셋째,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농약·비료 희석용으로는 되도록 빗물이나 다른 수원을 활용해보세요.
13m라는 숫자 하나만 믿고 넘어갔던 그때의 저를 돌이켜보면, 조금 더 알아보고 결정했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도 그 시행착오 덕분에 지금은 나름의 대응 체계를 갖추게 됐고, 다음 편에서는 제가 직접 만든 제철·제망간 필터 제작 과정을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본 글은 필자의 실제 농장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지역과 지질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질 판단은 반드시 전문 수질검사기관의 검사 결과를 따르시기 바랍니다.